목회칼럼 No. 89 목회는 기다림입니다
목회는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한 영혼이 구원 받기를 기다리고, 신앙이 성숙하기를 기다리고, 기도가 응답되기를 기다리고,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다리고…. 수많은 목회의 어려움 속에서도 버틸 수 있는 것은 목회는 기다림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기다림은 깨어지고 부서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성도들은 조금만 어려우면 교회와 목장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한 명의 성도가 귀한 개척교회 초기 젊은 부부 가정이 나오지 않아 한 아파트를 찾았습니다. 당시 시드니는 바람이 무척 불던 겨울이었습니다. 약속을 하고 갔기에 집안에 사람이 있는 것을 아는데 벨을 눌러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아파트 앞에서 바람을 맞으며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결국 만나고 돌아오는 길, 밀려오는 서글픔에 이것이 목회인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기다림은 내가 깨어지고 부서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기다림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노아는 120년 동안 방주를 지었고 아브라함은 25년의 기다림 끝에 약속의 아들을 얻었고, 모세는 애굽에서 40년, 광야에서 40년 도합 80년의 시간 끝에 출애굽을 위해 쓰임 받았고, 요셉은 오랜 기다림 끝에 결국 총리가 되었습니다.
기다림은 변화와 성장의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목회는 한 명, 두 명 늘어 지금 목회하고 있는 교회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목장을 말하면 푸른 초원에 양과 소들이 있는 목장을 생각했던 사람들이 목자로 목녀로 세워지고 이제는 그들이 한 영혼의 소중함을 알고 매주 목장에서 기다리는 삶을 삽니다.
제가 전도한 VIP 부부는 목장이 뭔지도 모르고 목장에서 삽겹살을 구워 먹는다는 말에 초대되었습니다. 남편은 집안 대대로 불심이 깊은 집안이라 4월 초파일이면 연등을 만들어 장식하는 사람이었고, 아내는 점쟁이의 말에 묶여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점쟁이의 말이 “당신은 40대에 새벽에 교회 가다가 교통사고 나서 죽을 운명이다”라고 하며 교회 근처는 얼씬도 못하게 했습니다. 그 부부가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나 지금은 목자로 또 초원지기로 주님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기다림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다림은 주님의 마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잔치를 배설하고 기다리는 것으로 표현하셨습니다. 잔치자리는 단순히 음식을 먹는 장소가 아니라 죄인들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는 자리요, 하나님의 가족 되었음을 선포하는 자리였습니다. 목회를 한다는 것은 주님의 기다리는 마음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기다림은 목회의 축복이었습니다. 이제는 목자들의 기다림을 봅니다. 목자들은 목장모임을 위해 일주일을 보내는 것 같다는 표현을 합니다. 목장 모임에 초대하기 위해 전화를 하고, 카톡을 보내고 기다리는 마음으로 음식을 준비합니다.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목장식구들이 집에 가득하면 목자는 행복해 합니다. 이렇게 한 영혼 한 영혼 예수를 영접하고 세례를 받고 제자로 세워져 목양하는 모습을 보니 목회의 기쁨이 이런 거구나 생각이듭니다.
목회자에게 기다림의 시간이 사라진다면 한 영혼에 대한 안타까움도 사라지고, 기도의 간절함도 사라질 것입니다. 목회가 안정도 되고 성장했다면 자랑하거나 교만해질 수 도 있을 것입니다. 나 자신도 모르게 매너리즘에 빠지고 매너리즘을 벗어나기 위해 다른 즐거움을 기웃거리는 속물 목회자로 변질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제 다시 한해를 달려가기 위해 내 자신에게 질문을 해봅니다. 지금은 나는 무엇을 기다리는가? 한결같은 마음으로 맡겨준 영혼을 위해 기다림의 길을 갈 수 있기를 기도해봅니다.
시드니에서 송영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