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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No. 95 부활로 다시 태어난 사람들

고덕호수교회 고덕호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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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부활의 종교다.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인처럼 불쌍한 사람도 없다고 바울은 말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 죄와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살아나셨다. 더 이상 죄의 노예도 아니고, 율법의 저주를 받지 않아도 된다. 십자가에서 그 모든 것을 끝이 났다. 우리는 예수와 함께 죽었고, 다시 살리심을 받는다. 기독교는 부활을 통해 죽은 종교가 아닌 살아있는 종교이다.

 

부활 후 주님은 제자들을 찾아가셨다.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자들에게, 엠마오로 내려가는 제자들에게, 방 안에 숨어있던 제자들에게, 갈릴리에 고기를 잡던 제자들에게, 오백여 형제에게 나타났다. 그리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려 다메섹으로 가던 사도바울에게 나타나셨다. 주님은 회의와 걱정에 싸인 제자들을 찾아가셨다. 그들을 위로하시고 영원히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부활의 주님을 만났던 사람들은 변화되었다. 겁쟁이가 용감해지고, 어리석은 자가 지혜로워졌으며, 포악한 사람이 평화의 메신저가 되었다. 부활은 우리로 하여금 더 이상 죄에서 살지 않고 영원한 진리를 위하여 살도록 촉구한다. 기독교는 십자가로 끝나지 않는다. 부활로 완성된다. 아직도 죄의 삶을 살고 있다면, 아직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아직도 희망이 없다면 거듭났는지 의심해 봐야 한다.

 

희망 없는 시대에 부활만이 희망이다. 영원히 살아계시는 주님의 통치가 희망이다. 버림받고 소외 받는 영혼들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십자가와 부활로 보여 주셨다. 우리는 부활을 보았는가. 우리는 부활의 삶을 살고 있는가. 부활만이 희망이다.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지금 여기에 영원히 함께 하신다.

 

 

강아지 똥과 민들레의 만남

돌이네 흰둥이가 골목길 담 밑 구석 쪽에 똥을 누었다. 날아가던 참새 한 마리가 ! ! 에그, 더러워하면서 가 버렸다. 강아지 똥은 그만 서러워 으앙!”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시간이 지나고 강아지 똥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난 더러운 똥인데, 어떻게 착하게 살 수 있을까?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텐데.’

 

봄비가 내렸다. 강아지 똥 앞에 파란 민들레가 싹이 돋아났다. “넌 뭐니?” 강아지 똥이 물었다. “난 예쁜 꽃을 피우는 민들레야.” “어떻게 그렇게 예쁜 꽃을 피우니?” “그건 하나님이 비를 내려 주시고, 따뜻한 햇볕을 쬐어 주시기 때문이야.” “그래, 그렇구나.” “그런데 한 가지 꼭 필요한 게 있어. 네가 거름이 되어 줘야 한단다.” “어머나! 그래? 정말 그래?”

 

강아지 똥은 얼마나 기뻤던지 민들레 싹을 힘껏 껴안아 버렸다. 그때부터 사흘 동안 비가 내렸다. 강아지 똥은 온몸이 비에 맞아 잘디잘게 부서졌고, 땅 속으로 스며들어가 민들레 뿌리로 모여들었다. 봄이 한창인 어느 날, 민들레 싹은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을 피웠다. 향긋한 꽃 냄새가 바람을 타고 퍼져 나갔다.

 

권정생 선생의 강아지 똥이야기다. 강아지 똥과 민들레의 만남은 처음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아무 쓸모없었던 강아지 똥이 민들레를 만나게 되면서 전혀 새로운 의미로 피어나는 것을 본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죄투성이였기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추하고 냄새나는 죄성이 죽음으로써 부활 생명이신 예수님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다.

 

 

너희는 내가 보내는 사랑의 편지박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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